페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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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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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어: Føroyar /ˈfœɹjaɹ/[1]
덴마크어: Færøerne /ˈfæɐ̯øːˀɐnə/[2]
영어: Faroe Islands
덴마크의 자치령. 다만 본국 덴마크와 달리 유럽연합(EU)에 소속되지는 않았다. EU 회원국의 속령들은 각자 상황에 따라 EU에서 제외할 수 있다. 덴마크의 또 다른 자치령 그린란드는 EU의 전신인 유럽 공동체에 소속됐다가 이후 탈퇴하여 역시 현재는 EU 소속이 아니다. 하지만 자치권이 없어서 1985년에 부랴부랴 EU를 탈퇴했던 그린란드와는 달리 페로 제도는 덴마크의 EU 가입 이전인 1948년에 자치권을 얻어 EU 회원인 적이 한 번도 없다. 화폐도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노르웨이와 덴마크의 영토였고, 지리적으로는 노르웨이 ~ 영국 스코틀랜드 ~ 아이슬란드를 잇는 삼각형의 중심에 있는 일군의 섬들이다. 이 섬의 넓이는 합치면 경주시보다 약간 적은 정도지만 인구밀도가 매우 낮아 5만 명에 불과하다. 한국 지자체 중에서는 면적 1464.14 ㎢에 인구 4만 3천여 명인 강원도 평창군과 가장 비슷하다.
가장 큰 도시는 토르스하운(Tórshavn). 역시 천혜의 자연이 관광자원이다. 또 고래사냥으로 유명한 섬이다. 교통편으로는 B737 수준도 취항이 가능한 규모의 보가르 공항(Vágar Airport)이 있지만, 토르스하운과는 다소 멀다. 여기서 도시로 가려면 해저터널을 이용해야 한다.
2. 역사
영국 스코틀랜드에 더 가깝지만, 바이킹 시대[3] 에 노르웨이의 영토가 되었다. 하지만 칼마르 동맹 시기와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시기를 거치면서 사실상 덴마크의 지배를 받는 땅이 되었다.[4]
그러다가 나폴레옹 전쟁 이후인 1814년 킬 조약에 따라 덴마크가 노르웨이가 지배권을 상실했다.[5] 하지만 킬 조약에서 그 동안 노르웨이의 일부였던 페로 제도를 따로 떼어내 덴마크의 영토로 넘긴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이에 따라 페로 제도는 이때부터 정식으로 덴마크 소속이 되었다.[6]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4월 9일 나치 독일군이 덴마크 본토를 점령하자 영국군은 여기에 맞서 4월 12일에 페로 제도를 점령했다. 페로 제도의 유일한 공항도 이 시기 영국군이 지은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나자 영국은 1945년 9월에 철군하면서 페로 제도를 덴마크에 반환하였다.
그리고 원래는 덴마크의 행정 구역에 불과했지만 1946년 9월 14일에 독립 국가가 되기 위한 국민 투표를 실시하였는데, 독립 찬성(덴마크와 페로 제도의 분리)이 1.5%p 차이로 가결되었다.(투표율 67.5%) 하지만 덴마크가 인정하지 않고 페로 제도의 자치 의회를 해산해버렸다. 이후 페로 제도의 총선에서도 독립 지지 정당이 승리하자 덴마크가 협상에 나섰고 1948년에 자치령이 되었다. 이때부터 페로 제도의 공용어는 페로어가 되었고, 덴마크어는 제2언어로 교육된다.
지금도 이 곳에는 독립운동이 남아 있고 독립을 희망하는 정당들이 자치의회 의석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현재 페로 제도의 자치는 덴마크 헌법과 그에 따른 자치법으로 규정되었을 뿐 페로 제도의 독자적 헌법은 없다.페로 제도의 독립진영은 헌법 제정을 희망하지만, 덴마크는 이를 실질적인 독립운동으로 보아 '헌법을 제정할 거면 차라리 독립을 선포해라.' 하고 경고하여 사실상 헌법 제정에 반대한다.
3.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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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 큰 섬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 가장 큰 곳은 스트레이모이(Streymoy)섬으로 토르스하운도 이 섬에 위치한 도시이다.
북위 62도 고위도에 있지만 바다의 영향으로 날씨는 동위도에 비해 온화한 편이다. 토르스하운의 1월 평균기온은 3.4℃로 거의 부산과 비슷한 수준[7] 다만 8월 평균기온도 10.6 ℃에 불과해 여름에도 춥기는 하다. 연 강수량은 토르스하운의 경우 1437 mm로 비는 많이 오는 편이다.
다만 날씨는 연평균습도 89.2%로 습도가 매우 높고 변덕스럽고 바람이 잦아 체감온도는 그보다 더욱 낮다. 1년에 260일 이상 비가 온다고 한다.[8]
그리고 일조시간이 극단적으로 적다. 토르스하운의 연간 일조시간은 841시간에 불과한데 이 정도면 '''하루에 평균 2시간''' 수준이다. 일조시간 적기로 악명 높은 영국 런던의 55% 정도에 불과하다다. 사람이 정착해서 사는 지역 중에서는 일조량이 적기로 손에 꼽을 만하다.[9]
그리고 토양이 매우 척박하여, 초원은 있지만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10] 그럼에도 아이슬란드와 달리 덴마크나 노르웨이 등 인접 지역으로부터 목재를 수입하는 것이 쉬웠기 때문에 목조로 된 집들은 흔하게 볼 수 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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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맞닿아 있는 쇠르보그스바튼 호수(Lake Sørvágsvatn)가 유명하다.
4. 고래 사냥
페로 제도는 연례행사인 길잡이고래(Pilot Whale) 사냥으로 유명하다. 이 고래는 범고래과로, 긴지느러미 들쇠고래라고도 하며 성체의 몸길이가 3.8~6 m 정도이다. 섬 주민들은 오랜 옛날부터 길잡이고래를 식용으로 잡았는데, 한국 어부들이 멸치를 몰듯 바다에서 골짜기로 고래떼를 몰아서 포경했다. 농사를 거의 지을 수 없는 환경여건상 고래고기는 이들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품이었고 오늘날 고래고기는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 각 가족이 사냥에 참가하여 분배받은 몫을 보관해놓고 먹을 뿐.
20세기 이후 고래 자원의 감소가 두드러지면서 포경 규제가 시작되었을 때 이들의 포경도 검토 대상이 되었지만 별다른 규제는 가해지지 않았다. 전통문화 유지 측면도 있었지만 이들이 잡는 고래는 상업적인 포경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 이들처럼 고래를 식용하는 이누이트나 시베리아 원주민들이 잡는 북극고래(Bowhead whale)는 덩치 때문에 유럽인들의 상업적 포경 대상이었으므로 수가 격감했지만, 덩치가 작은 길잡이고래는 상업적 포경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페로 제도 사람들이 먹기 위한 목적으로 잡는 고래니까 개체수가 줄 일이 없었던 것. 현재도 페로 제도 사람들이 매년 잡는 길잡이고래의 개체수는 전체 길잡이 고래 개체수의 0.1%를 조금 더 넘는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즉 고래 개체수에는 전혀 위협이 안 된다는 이야기.
21세기로 들어온 현대에도 페로 제도의 육류 공급량 중 30%를 직접 잡은 길잡이고래 고기가 차지하는데, 고래사냥을 중단한다면 이를 보충할 식량을 다른 곳에서 더 구해와야 한다. 바다에서 생선을 더 많이 잡든가 육지에서 육류를 수입해오든가섬의 자원을 파괴하면서 키우는 가축의 수를 늘이든가... 이런 결과를 피하기 위해 고래잡이에는 별 규제를 가하지 않았다. 잡힌 고래의 수는 1990년대에는 연평균 956마리이다. 2006년에도 856마리가 잡혔다.
4.1. 동물보호단체와의 충돌
하지만 주민들의 생존에 필요하다고 해서 동물보호단체가 그냥 넘어가지는 않는다. 피로 물든 바다라는 이미지가 주는 인상 때문이겠지만 동물보호단체의 사냥금지 요구는 꽤 거센 편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과 동물보호단체간의 관계가 나쁘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해왔던 전통이라고 반발하며 동물보호단체들의 요구를 거부한다.
물론 이에 따라 포경 방식에 어느 정도 변화도 있었다. 가능한 고래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서, 포획시에 창이나 작살을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1985년부터 금지) 날카로운 갈고리도 쓰지 못한다. 예전에는 스스로 올라오지 않는 고래를 해안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날카로운 갈고리를 지방층에 꽂아서 끌어당겼지만, 오늘날에는 무딘 갈고리를 고래의 분기공(숨구멍)에 꽂아서 끌어당기도록 하고, 날카로운 갈고리는 이미 죽은 고래에만 사용한다. 1993년부터 무딘 갈고리를 쓰는 이유는 그것이 더 인도주의적이기 때문. 일단 해안으로 고래가 올라오면 그린다크뉘부르(Grindaknívur)라는 전통 칼로 목을 자른다. 목이 잘린 고래가 죽을 때까지는 수 초에서 수 분까지 걸리는데 평균 30초라고.
4.2. 중금속 오염 문제
현대에 페로 제도 근해에서 잡히는 고래고기는 중금속에 심하게 오염되었다. 영국-프랑스-독일-미국 등의 국가들이 백 년 이상 퍼부어댄 산업폐수와 쓰레기의 영향으로 인해 북대서양이 상당히 오염되었기 때문. 그리고 이런 공해물질의 농축도는 먹이사슬의 위쪽으로 갈수록 심하게 마련이어서, 페로 제도에서 잡히는 길잡이고래의 체내에는 수은, PCB, 기타 오염물질의 농도가 위험한 수준이다.
2008년 11월에는 페로 제도의 수석 의료관이 고래 식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발표할 정도였고, 2015년 현재까지 페로 제도의 인구 중 5천 명 정도가 고래고기 수은 때문에 병을 앓거나 사망했다고 한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알레르기 환자가 많이 나타났다. 건강을 생각하자면 고래잡이를 당장 중단해야 하지만 문제는 '''그럼 대신 뭘 먹느냐''' 하는 것이다. 아이슬란드보다도 농사를 짓기에 나쁜 기후이고, 양을 기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수가 적다.
5. 경제
아이슬란드처럼 대체로 어업이 주 산업이고, 그 외에 소규모 선박 수리업 등이 있다.
나라는 아니지만 페로 제도도 일본과 같은 시기에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시대가 있었다(...). 당시 자치정부 부채는 '''140%'''까지 치솟았으며 결국 디폴트 선언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도 1990년대 후반부터 4%대 성장세를 보이며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했고 정부부채도 급격히 줄기 시작해 2008년에는 되려 경제위기에 빠졌던 아이슬란드를 지원하기도 했다. #
6. 정치
7. 사회
텔레비전 방송은 1985년에야 이루어졌다. 또한 1907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85년 동안 금주법이 실시된 바 있다. 금주법 폐지 이후 다른 북유럽 국가들처럼 술 전매제도로 대체되었다. 페로 제도에서 술을 사려면 '루산'(Rúsan)이란 곳을 찾아야 한다.
2016년에 페로 제도에서도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이미 2013년에 있던 페로 제도 내 여론조사에서도 68%가 동성결혼에 찬성한다고 밝혀졌었다. 이로서 모든 노르드+스칸디나비아국가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8. 종교
다른 북유럽 국가처럼 루터교회가 대부분이다. 1990년대까지는 교회 출석률이 높았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다른 노르딕 국가들처럼 빠르게 감소 중이다. 문화적 차원에서도 아이슬란드와 비교했을 때 루터교 경건주의에 기반한 요소들은 상당수 존중되지만[12] 2010년대에 들어 동성결혼을 호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등 문화로서의 루터교적 정체성 역시 날이 갈수록 약화되어간다.
9. 교육
고등교육기관은 페로 제도 대학교가 유일하다. 교원 76명, 직원 24명, 대학생 850명 정도의 작은 학교. 대부분 교육은 페로어로 하지만, 서부 북유럽학 (West Nordic studies) 석사에 한해 영어로 수업한다. [13]
10. 스포츠
IOC에 가입하지 않아 현재로서는 자체적인 올림픽 대표팀을 보낼 수 없다. 페로 제도 출신 선수는 덴마크 올림픽 대표팀의 일원으로만 참가할 수 있다. 다만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IPC)에는 가맹해서 패럴림픽 대회에는 덴마크와 별도로 대표팀을 내보낸다. 그래서 패럴림픽과의 관계 때문에 FRO라는 IOC 국가코드가 할당받았다.[14]
1990년대에 개정된 올림픽 헌장에 따르면 헌장 개정 이전에 IOC에 가입한 경우를 빼고는 속령이 IOC에 신규 가입할 수 없다. 올림픽 헌장에서는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주권 국가(독립 국가)만 IOC에 가입할 수 있게 해놓은 것. 그래서 페로 제도가 IOC에 가입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가능하게 하려면 올림픽 헌장부터 개정해야 할 듯.
그렇기 때문에 유럽올림픽위원회에도 가입을 못했다. 대신 2015 바쿠 유러피언 게임에서 지브롤터와 옵서버 형식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축구는 독자적인 국가대표팀이 있으며, 자체 프로 리그인 프리미어 리그가 있으며 리그 스폰서인 은행 베트리(Betri)의 이름을 따서 베트리 데일딘 맨(Betri deildin Menn)이란 이름[15] 으로도 불린다. 1942년부터 리그를 열었지만 1993년까지 유럽 클럽 대항전은 나가질 못했다. 1993년부터 리그를 다시 2부 리그 체제로 재편성했다. 1부 리그에는 10개팀이 소속되어 있으며 우승팀은 UEFA 챔피언스 리그 2차 예선에 나간다. 2, 3위팀은 UEFA 유로파 리그 2차 예선의 진출권을 받는다. 어쨌든 프로 축구 리그 성적과 달리 축구는 인기가 가장 많은 구기 종목이다.
덴마크령이라 핸드볼은 잘하며, 독자적으로 국가대표팀도 가지고 있다.
11. 출신 인물
- 닐스 뤼베르 핀센: 190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심상성 낭창 치료법을 개발하였다.
- 라스무스 라스무센: 페로어 작가, 독립운동가.
- 아이뵈르 폴스되티르: 가수, 드라마 안녕 프란체스카에 나온 삽입곡들이 유명한데, 그 중 이 가수의 음악(유튜브 링크)이 있다.
- 요안 시문 에드문손 - 페로 제도 출신 최초의 분데스리거.
12. 기타
속령개념까지 포함해서 유럽국가중 맥도날드 점포가 아예 없는 지역중 하나다. 대신 버거킹은 있다고 한다.
빈란드 사가에서 토르즈가 죽은 곳이 여기다.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 2 맵 모드인 ProMods가 페로 제도 전체를 재구성했다. 구현된 도시는 토르스하운, 클라스비크 단 2개만 있다. 공항까지 있다는 게 덤.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는 독립된 프로빈스(백작령급) 으로 등장한다. 별 볼일 없는 가난하고 후진 영토지만... 그래도 백작령이라, 병사 백여 명을 병사는 동원할 수 있으니 나름대로 버프를 받은 것일지도. 바이킹 시대 이후 노르웨이령이었음을 감안했는지, 스코틀랜드와 가깝지만 노르웨이 왕국령의 de jure 영토로 간주된다.
삼성전자 갤럭시노트8 TV 광고에 등장하였다.
인구가 워낙 적다보니 구글 번역도 페로어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페로어 번역 사이트를 제작하였으나... 등록되지 않은 단어를 입력하면 아직 천 여개 정도의 클립 데이터베이스만 확보하였다며 기다려달라는 안내만 뜬다. [16]
[1] 푀로야르 정도로 쓸 수 있지만 발음 기호에서도 나오듯이 페로어의 r발음은 영어와 비슷하기 때문에 실제론 '''푈얄'''정도로 들린다.[2] 외래어 표기법대로 적으면 '페뢰에르네'. 실제 발음은 '패어외어너' 정도.[3] 사실 그 시절에는 현 영국도 상당 지역이 바이킹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4] 스코틀랜드 최북단 섬들인 셰틀랜드 제도와 오크니 제도도 1468년까지는 페로 제도와 상황이 비슷했다. 하지만 이때 덴마크-노르웨이의 마르가레테(마거릿) 공주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3세에게 시집 가면서 지참금을 안 보내는 대신 그 일대의 섬을 스코틀랜드에 담보(...)로 맡겼다. 그 후로 덴마크-노르웨이가 따로 지참금을 스코틀랜드에 안 보냈기 때문에 자동으로 스코틀랜드 땅으로 흡수되어 현재까지 이어진다. 심지어 셰틀랜드와 오크니 제도에는 페로어와 비슷한 바이킹 언어인 노른어가 19세기 중반까지 존재했을 정도다.[5] 이때부터 스웨덴-노르웨이 동군연합(同君聯合)이 성립되었다.[6] 비슷하게 동군연합이 끝나면서 일부 지역의 소속국이 바뀐 경우로 세우타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7] 동위도의 캐나다 옐로우나이프는 1월 평균 기온이 '''-25.6 ℃''', 러시아 야쿠츠크는 '''-38.6 ℃'''이다. 같은 유럽 내에서도 동위도에 있는 스웨덴 순스발의 1월 평균 기온이 -6.6 ℃, 핀란드 이위배스퀼래의 2월 평균 기온은 -8.5 ℃다. 앞의 예시를 봤을 때 저 정도 값이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저 정도 값만 되어도 강원도 최전방 이상으로 추운 동네들이다.[8] 한국은 1년 총강수량은 페로제도보다 좀 적은 수준이지만, 대부분이 한여름에 몰아서 내리기 때문에 강수일수는 생각보다 적다.[9] 페로 제도보다 일조시간이 적은 지역은 노르웨이의 비외르뇌위아(Bjørnøya) 같은 극지방의 작은 섬들 몇 곳과 저기 남쪽에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령인 프린스 에드워드 제도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비외르뇌위아와 프린스 에드워드 제도에는 사람이 살지 못한다.[10] 간혹 나무가 있는 사진을 찾아볼 수 있을 텐데, 그 나무들은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심어놓은 것이다.[11] 아이슬란드는 덴마크와의 동군연합 시절에도 덴마크 본토와 너무 멀어서 목재를 수입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흙집을 짓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12] 출처[13] 하지만 영어를 필수언어로 가르친다.[14] 이렇건 올림픽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패럴림픽에는 참여하는 곳으로 마카오가 있다.[15] 과거에는 포르물라다일딘(Formuladeildin)이라고 불렀다.[16] 외국인을 위한 사이트치고는 '''나는 벌레를 먹는 것을 즐긴다'''같이 뜬금없는 것도 있다.